발효의 시간처럼, 천천히 익어가는 한식의 대화
- 게시판명
- NANRO INSIGHT
- 날짜
- 2025년 10월 26일
- 장소
- 백양사 천진암
천진암에는 긴 시간의 숨이 머물러 있었다. 10월 26일, 그곳에서 한국과 세계의 셰프들이 한식의 뿌리를 함께 이야기했다. 사찰 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문화의 요리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한식의 철학과 자연의 조화를 몸소 경험하며, 음식으로 문화의 언어를 나누었다. 이번 자리는 한식의 정신이 세계의 감각과 어우러지는 시간이었다.
정관스님과 천진암의 의미
정관스님은 텃밭과 장독대, 발효창고를 천천히 걸으며 “음식은 자연의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고 말했다. 표고버섯과 나물, 된장과 식초 같은 식재료는 그에게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수행의 매개였다. “음식이 사람의 마음을 씻어내고 회복시켜 준다”는 그의 말처럼, 요리는 마음공부이자 생명의 순환을 담은 행위였다.
음식과 수행, 기억의 맛으로 이어지다
스님이 보여준 표고버섯 요리는 특히 인상 깊었다. “참나무의 기운을 먹고 자란 버섯은 그 에너지를 사람에게 전한다”고 스님은 설명했다. 나물 한 줌에도 계절의 흐름이 있고, 말리고 삶는 과정에도 자연의 도가 깃든다. 스님은 “익히고 간을 맞추는 일은 배움이 아니라 기억의 일”이라 말했다. 스님이 강조한 ‘기억의 맛’은 인간과 자연이 오랜 시간 함께 쌓아온 감각의 흔적이었다.
세계 셰프들의 참여와 교류
이날 행사에는 스와니예의 이준, 제로컴플렉스의 이충후, 알라 프리마의 김진혁 셰프 등 국내 셰프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Ferran Adrià(elBulli Foundation), Toni Massanés(Alicia Foundation), 미국에서 활동하는 Suzanne Cupps, Jihan Lee, Yuu Shimano, Fidel Caballero 셰프 등이 참여했다.
각기 다른 문화에서 온 셰프들은 사찰의 공양과 발효음식을 통해 한식의 본질을 새롭게 해석했다. 그중 Ferran Adrià는 이렇게 말했다. “한식의 발효는 세계 요리의 미래를 향한 가장 오래된 실험이다.” 그의 말처럼, 발효는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라 사고의 방식이며, 시간이 만들어낸 미학이라 할 수 있다.
Ferran Adrià의 시선
Ferran Adrià는 천진암의 장독대 앞에서 오래된 발효의 냄새를 맡으며, “전통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진화하는 실험”이라 말했다. 그는 한식의 발효를 과학적 탐구이자 창의적 언어로 보았다. 그에게 천진암의 공양은 ‘시간과 인간의 협업’이었고, 요리는 그 기록이었다.
Toni Massanés의 관점
Toni Massanés는 “발효는 과학이자 문화의 언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정관스님의 식탁에서 ‘지속 가능한 미식’의 원형을 보았다고 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지역과 계절의 리듬에 맞춰 음식을 짓는 일. 그것이 바로 세계가 주목하는 한식의 본질이었다.
난로 헤리티지는 이번 행사를 통해 한식의 뿌리를 다시 잇고, 그 의미를 세계의 언어로 번역하고 향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천진암에서 피어난 대화는 일시적인 체험이 아니라, 오래 숙성될 한식의 철학이었다. 발효의 시간처럼 느리고 단단하게, 한식은 지금도 세계 속에서 익어가고 있다.